초대석


<역절할머니맥주> 소종근 대표

Playing × Sense
<역전할머니맥주> 소종근 대표

센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감각이나 판단력 또는 그에 따른 행동을 말한다. 이러한 능력은 관계 속에서의 놀이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때로는 지식이나 정보, 계산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한 직감.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있는 그 무엇. 글 김준성 기자

 

건설현장 관리, 휴대폰 판매, 식재료 도소매·유통까지
2006년, 군 전역을 한 후 그는 스물셋 나이에 건설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건설업을 하셨던 터라 집안 살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누나 셋이 있는 집의 막내아들. 빈곤함 없이 자라면서 친구들과의 관계 또한 좋았고 단체 활동에서도 누군가를 이끄는 걸 더 좋아했다. 하지만 건설현장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아버지를 도와드리기 위해 현장관리를 도맡았지만 워낙 나이가 어리다보니 아저씨들과의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직급과 체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스템과 전혀 상관없이 돌아가는 현장상황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여러 번. 그렇게 반복되는 악순환에 지쳐 뭔가 다른 일 할 것을 알아보다가 이듬해엔 휴대폰 판매하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어릴 때는 부족하지 않게 살았지만, 집안 사정을 비롯한 여러 가지 주변 환경이 안 좋아졌죠.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이것저것 찾았던 것 같아요. 휴대폰을 판매하는 일은 처음이었지만 어렵지 않았죠. 판매수량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았는데, 당시 한 달 수입만 500~600만원 정도였어요. 여러 번 판매 왕에 오르며 팀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지만 그건 또 맘에 들지 않았죠. 팀장이 되는 순간 관리직이 되고, 급여 또한 200만원으로 고정됐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팀장이 되려고 2~3년간 열심히 했는데, 저는 8개월 만에 팀장으로 승진할 수밖에 없어 일을 그만뒀어요. 팀장으로 일하는 게, 내가 직접 영업하며 일하는 것보다 돈을 적게 받으니 만족할 수가 없던 거죠. 그러던 중 아버지가 작업 중 사고를 당하셔서 다시 건설현장 일을 1년 정도 하게 됐고,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 우울증에 빠져 방황하는 날들도 많았어요.”
그러던 중 매형을 통해 “식품회사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게 된다. 건어물을 비롯해 각종 식재료 도소매·유통을 하는 일이었는데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10시까지 일하고 월 120만원 정도를 받았다. 하지만 ‘늘 부지런하고 일 잘 한다’는 평가를 받아 급여는 2개월에 한 번씩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식품회사 일을 하게 된지 2년 만에 총 관리직까지 맡게 된다.
“어디서든 빠른 시간에 승진하고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적응력인 거 같아요. 이 일을 하면서도 전북 익산 시내에서 어느 매장이 잘 되는지, 상권은 어디가 좋은지, 장사가 잘 되는 매장은 왜 잘 되는 건지 등등을 하나하나 고민하고 내 것으로 만들었으니까요. 이 때 알게 된 현장감각과 지식, 정보들이 제겐 큰 자산 중 하나였죠.”
‘일하는 센스’라는 건 학교에서 가르치는 게 아니다. 전문지식이나 정보를 많이 안다고 해서 그 능력이 절로 키워지는 것도 아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야만 하고, 일의 과정에서 어떤 게 더 중요한지를 파악해야 하고, 이처럼 일련의 과정들을 통합적으로 사고하며 컨트롤하는 동시에, 상황에 따라서는 목표를 위해 무식하게 밀어붙일 수 있어야만 겨우 ‘일의 센스’라는 것을 인정받게 되는 것.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든 그를 자신만만하게 만드는 건 바로 이런 종류의 감각, 센스였다.

5월호 초대석_ 본문1 copy

 

스몰비어, 찜닭전문점 등 최대 9개 매장까지 운영
‘모든 일이 잘 풀려갈 때가 오히려 조심해야 할 때’라고 했던가. 2011년, 식품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친구가 그의 돈 7000만원을 가지고 도망가면서 갑자기 어려운 날을 맞닥뜨리게 된다. 살고 있던 집을 팔고 처갓집의 6.6m²(2평)짜리 작은 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는 ‘언제까지 월급쟁이로 살 수는 없고, 이제 천천히 자금을 모아서 내 장사, 사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2013년 4월, 알뜰살뜰 모아놓은 보증금 1000만원으로 115.7m²(35평)짜리 맥줏집을 오픈한다. 무너질 수도, 무너져서도 안 되는 상황.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맥줏집 운영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첫 날 매출 150만원, 그리고 첫 달 매출 5000만원.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매출도 점차 올라가는 것 같더니만 그 해 10월엔 또 다른 것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맥줏집을 오픈하게 된 건 전북 익산의 지역상권과 식재료 물류유통 등에 관한 것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죠. 자신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매장을 오픈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주가 바뀌면서 월세가 오른 거예요. 그 작은 맥줏집을 닫고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그 해 11월, 스몰비어 프랜차이즈 매장 하나를 오픈했어요. 59.5m²(18평)짜리 매장이었는데 월 매출 4000~5000만원, 순수익만 1500만원 이상이었죠. 그렇게 여기저기서 빌린 돈을 조금씩 갚아나가기 시작했어요. 자금의 여유가 생기니 투자 또한 계속하게 됐죠. 2014년 4월에는 165.2m²(50평)짜리 막걸리포차를, 그 해 8월에는 82.6m²(25평) 규모의 스몰비어 프랜차이즈 매장을 하나 더 오픈했어요. 2015년에는 198.3m²(60평) 규모의 찜닭전문점을 연달아 오픈해 그 매장에서만 월 1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2016년에는 포차 프랜차이즈 2개 매장을 추가 오픈했죠. 그렇게 총 9개 브랜드 매장, 동시에 5개 매장까지 운영했었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저 앞만 보고 달렸던 것 같아요.”
그가 운영하는 매장들이 전부 괜찮은 매출을 올리자 각 프랜차이즈 본사로부터 전라도 지역 지부장 제안이 끊임없이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편으로는 슬슬 염증이 자라났다. 국내에서는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검증되지 않은 프랜차이즈들로 인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이따금씩 그를 회의감에 젖어들도록 만들었다. 안정적이면서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만들 수는 없을까. <역전할머니맥주>의 태동은 그렇게 조용히 시작됐다.

 

* 자세한 내용은 <월간외식경영> 2018년 5월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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