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또 다른 면
농업회사법인 다선(주) 권경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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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발자국 앞서가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 현재의 소비자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할 뿐만 아니라 몇 년 후의 트렌드도 미리 예측해 반영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살아야 하는 서로 다른 모습, 지금까지의 그녀가 바로 그렇다. 글 김준성 기자

 

30여년 역사의 생면·제조유통업체 여성 CEO
외식업계에서 면 요리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아이템 중 하나다. 직접 자가제면 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식재료원가 측면의 부담이 비교적 적어 식당 운영효율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쉽고 빠르게 조리해낼 수 있고, 고기구이나 만두 등 다양한 사이드메뉴와의 조합 또한 가능해 객 단가 끌어올리기에 수월하기 때문이다.
농업회사법인 다선(주)은 올해로 27년 된 생면·제조유통업체. 경기도 이천에 HACCP 인증을 받은 793m²(240평) 규모의 제조공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량 일괄생산 및 식당·업체별 맞춤형 소량생산이 가능한 두 가지 생산라인을 갖추고 하루 20톤의 면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동과 소바, 막국수, 칼국수, 수제비, 라면, 콩국수, 그리고 보리국수 등 다양한 종류의 생면을 식당과 프랜차이즈 업체 등 전국 7000여 곳에 납품하고 있는 이곳은 외식관련사업을 하는데 있어 꼭 알아두면 좋을 업체이기도 하다.
이 회사의 대표는 여성 CEO, 권경자 대표다. 30여 년 전, 국내에서 생면이라는 개념조차 찾아보기 힘들던 때에 면제품을 전문으로 하는 제조유통업체의 운영을 혼자서 시작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 퀄리티 있는 제품으로 지금의 입지를 다져오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면제품 제조·유통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얼까.
“어린 시절, 어머니가 혼자서 칼국수 집을 운영하셨어요. 경북 영양시장 안, 33m²(10평) 규모의 작은 매장이었는데 틈틈이 어머니 일을 돕느라 밀가루 반죽은 늘 익숙한 것들 중 하나였죠. 특히 새벽, 동네 산에 올라 땔감나무를 가지고 내려오면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그제야 겨우 칼국수나 수제비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었어요. 당시 먹었던 그 음식이 얼마나 맛있었는지요. 면 요리는 그때부터 늘 친숙하게 느꼈기 때문에 면제품 제조·유통사업도 큰 두려움 없이 시작할 수 있던 게 아닐까 생각해요.”
오빠 셋과 언니를 둔 막내. 집안의 모든 사랑을 독차지했을 것 같지만, 그녀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엄격한 오빠들, 그리고 칼국수 집을 혼자 운영하느라 매일 피곤하고 힘들었던 어머니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그녀는 스스로 성숙하고 단단해지는 법을 터득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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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둘 나이에 생면제조공장 설립, ‘다선’의 시작
“20대 때는 작은 규모로 어묵유통과 관련된 일을 했어요. 어머니의 칼국수 집을 틈틈이 도와드리며, 시장 안에서 다른 상인들이 판매하고 있던 어묵도 나름 눈여겨보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제품유통에 대한 현장경험들을 조금씩 배우고 쌓아갔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 1992년, 서른 살 되던 해였나. 일본 면 기술전문가인 정정옥 선생님과 인연이 된 거예요. 평소에도 워낙 면 요리를 좋아했던 터라 정정옥 선생님께도 많은 것들을 물어보며 하나하나 배웠고, 일본을 오가면서 우동과 소바, 라멘도 자주 접할 수 있었죠. ‘앞으로 한국에서도 생면과 관련된 시장이 점점 더 커지겠구나’하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리고는 2년여의 준비 끝에 1994년, 제면공장과 함께 ‘다선유통’을 설립하게 된 거죠.”
하지만 여자 혼자만의 힘으로 쉬운 건 하나도 없었다. 일을 벌려놓기는 했지만 ‘국수시장에서 과연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하는 막연한 불안감까지도 불쑥불쑥 그녀를 찾아들었다. 게다가 밤낮없이 관리해야만 하는 면 제조과정은 어렵고 고된 일의 연속이었다. 당시엔 경제적으로 너무 열악해 제면기로 하루 100kg의 생칼국수만 생산했지만, 그마저도 제조과정에서 잠깐의 실수 한 번이 생기면 생산일정 전체를 망치게 되고 그로 인해 납품기한이 연기되면 수많은 식당과 외식업체들이 어려워진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재래시장에 칼국수 제품을 납품하고, 하루 2~3시간만 잘 수밖에 없는 날들이 많았어요. 어느 날 갑자기 부도가 나서 문 닫는 업체들 때문에 돈 못 받는 일들도 허다했고, 납품금액을 제때 받지 못해 속만 태우는 날도 많았죠. 그렇게 사람에 대해 배신감도 느끼고 현장의 냉혹함도 몸소 겪으면서 점점 마음에 굳은살도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전국 각지의 시장과 점포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영업을 하면서 여자라는 편견과 맞서 싸우는 일도 못지않게 어려운 일이었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늘 도움을 주셨던 좋은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잘 걸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 강인하기만한 어머니를 곁에서 늘 보고 자라왔던지라 그녀 또한 그리 나약하지는 않았다. 거래처에서 “한 밤중 배송이 어려워 ‘다선’ 제품을 쓰기 어렵다”고 하면 그녀가 직접 야간배송을 해주기도 했고, 납품금액을 받으러 간 거래처에서 사장님이 몰래 도망갈라치면 웃는 얼굴로 그 문을 가로막고 서서 기어코 돈을 받아오기도 했다. 30대 초중반의 그녀는 그렇게 혼자 우뚝 서기 위해 그만큼 차갑게, 그리고 강해져야만 했다.

 

 

* 자세한 내용은 2018년 11월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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