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달봉이치킨> 양종훈 대표


돈이 없어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배달밖에 할 수 없는, 동네 후미진 곳 10평 매장으로까지 밀려났다. 하지만 그는, 배달밖에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배달로 성공하게 됐다. 글 김준성 기자

10년 다닌 회사 그만두고 시작한 닭 꼬치 집
<달봉이치킨> 대표이자 ‘배달외식업연구소’ 소장. 그의 이름 뒤에 따라붙는 직함이다. 늘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 약간은 어수룩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그는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내공을 가지고 있다.
<달봉이치킨>의 매장 수는 4월 현재, 전국 23개. 최근에는 “각 가맹점의 원재료와 부재료 값을 상반기까지 동결하며 납품되는 닭고기 값도 현재보다 낮추는 동시에 그 외 인상되는 금액은 본사에서 전적으로 부담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한 배달의 민족 ‘슈퍼리스트’ 광고비용으로 전 가맹점에 1300만원의 본사 비용을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배달의 민족 4년 연속 대한민국 배달대상 수상, 지난해 6월에는 스타트업 전문 투자기업인 매쉬업엔젤스로부터 적지 않은 투자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배달외식업연구소를 통해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외식인 대상으로 정기적인 강연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렇게 다양한 활동으로, 현재 그를 모르는 외식인이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외식업계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됐을까. 그리고 결코 흔들리지 않는 내공과 에너지는 언제 어디서부터 비롯된 걸까.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졸업한 후에는 당연히 정보통신과 관련된 기업에 들어가 10년간 앞만 바라보며 열심히 일을 했지. 통신관련 자격증도 여러 개 취득하고 최연소 팀장을 맡기도 했다. 영업직도 맡게 되면서는 ‘나는 상품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을 파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렇게 사람과의 신뢰를 소중히 하게 됐다. 그런데 회사의 영업비용이 줄어들면서 개인 비용으로 충당하는 경우가 늘어나게 된 거다. 당시, 아내가 다니던 회사도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되고 급여까지 밀리고 있는 상황에 우연히 대구에 친구를 만나러 가게 됐다. 그 친구는 대구에서 닭 꼬치 집을 오픈해 막 운영을 시작하고 있었는데, 손님들이 줄을 설 정도로 잘 되는 거다. 생각해보니 대전에는 닭 꼬치 집이 없는 거 같아서 ‘나도 한 번 해볼까’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를 때 일은 벌어진다 했던가. 그는 이때부터 전국을 돌며 닭 꼬치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창업에 필요한 유통업체에서부터 납품업체, 각각의 주방기물 등에 이르기까지 샅샅이 찾아보고 또 알아봤다. 그리고 2005년 초, 그의 나이 서른넷 되던 해. 드디어 대전의 한 중학교 앞에 <꼬지와 달봉이>라는 이름으로 49.5m²(15평) 규모의 작은 매장을 오픈하게 된다.

6개월 만에 30여개 가맹점 오픈, 그러나
49.5m²(15평) 규모의 작은 공간 안에는 사무실과 냉장·냉동창고, 닭 꼬치를 판매할 수 있는 곳까지 모두 마련돼 있었다. 사무실에는 책상 2개와 소파 1개가 전부. 그곳에선 프랜차이즈 가맹점 계약을 받았다. 애초부터 프랜차이즈 사업을 염두에 두고 시작했던 일이기에 막무가내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천천히 공부하고 준비해온 것들을 동시에 펼쳐나가고 싶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잘 되는 바람에 깜짝 놀랐었다. 1000원짜리 닭 꼬치였는데도 불구하고 그 작은 매장에서 월평균 3500만원의 매출을 올렸으니까. 죽어있는 골목상권에서 1~2시간 동안 500개 이상의 닭 꼬치를 팔았다. 당시엔 신용카드 단말기도 가지고 있지 않아 모두 현금, 1000원짜리를 검은색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와 그 날 저녁엔 ‘돈 세다 잠드는 게 이런 느낌이겠구나’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작은 매장이 잘 되다 보니 가맹문의도 계속해서 이어졌고. 6개월 만에 무려 30여개의 가맹점이 생겨났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변수가 나타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2005년, 그가 막 창업을 하고 정신없이 잘 나갈 때 즈음 AI, 이른 바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전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매출은 큰 폭으로 줄어들었고 각 가맹점들의 폐업 또한 속출했다. 이렇게 계속해서 잘 나갈 거라 생각했었고, 마음 한편으로는 자만심이 스멀스멀 자리 잡고 있을 때였다. 뜻하지 않은 외부요인으로 인해 망할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한,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통신회사에서 영업을 할 때부터 ‘사람이 소중하다’고 믿었던 사람. 각 가맹점들의 2년 계약기간이 끝날 때까지 책임감으로 관리, 지원을 해주었고 2005년에 시작한 사업은 2007년에야 그렇게 조용히 마무리를 짓게 된다.

삶을 끝내고 싶었던 밑바닥, 그리고
그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마음을 추스르고 난 후에 한국식 이자카야인 <모야>를 오픈한다. 당시, <피쉬앤그릴> 등의 브랜드들이 한창 인기를 끌던 때였다. 이 또한 프랜차이즈 사업을 염두에 두고 론칭한 브랜드였는데, 직접 운영하는 매장만 600만원의 최고 일 매출을 기록했을 뿐 가맹사업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닭 꼬치로 30여개 매장을 오픈해봤으니 이 브랜드도 가맹사업이 쉬울 줄 알았지만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그 자신 스스로 외식사업 초보라는 걸 절절히 깨닫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매주 서울에 올라가 프랜차이즈 전문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위험한 짓을 벌이고 있었는지 알게 됐다. 한 때 ‘유행’하는 업종과 ‘유망’한 업종이 다르다는 것도 배우게 됐고. 프랜차이즈 현장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유명 삼겹살 프랜차이즈 본사에 들어가 6개월간 실무를 익히기도 하고,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대전 지사장을 맡아 영업교육에서부터 시스템, 브랜딩, 염지, 소스, 파우더 제조에 이르기까지 모두 컨트롤하며 하나하나 몸에 익혀나갔다. 범위를 더 넓혀 대구 지사장까지 맡았고 대전과 대구지역에 오픈한 가맹점 10개가 그 브랜드 전국 매출의 50%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노력과는 달리, 본사의 발전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하게 되면서 계약기간 만료와 함께 가맹점 모두를 본사 측에 넘기게 됐다. 그리곤 내 매장 하나와 함께 수억 원의 빚을 떠안았다. 지사장으로 인정받기 위해 내 돈을 너무 많이 썼던 거다. 그렇게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버렸다.”
수중에 하나 남은 그의 매장은 2011년부터 <치킨N달봉이>로 상호명을 변경한 후 영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곧 반경 100m 안에 4개의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이 생겨나고 권리금 때문에 건물에서 쫓겨나면서 배달밖에 할 수 없는, 동네 후미진 곳 33m²(10평) 매장으로까지 밀려나게 된다. 2014년의 일이었다.
“어머니가 주방을, 내가 배달을 맡아 매장을 운영했다. 한 때 괜찮은 시절도 있었는데 다시 배달을 하려니 스스로의 처지가 한심하기도 했고, 오토바이를 타다가도 시시때때로 눈물이 흘렀다. 매출은 예상대로 나오지 않아 매번 카드빚으로 식재료를 구매했다. 그렇게 빚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고 결국엔 식자재 공급도 받기 어려워졌다. 당시엔 운전을 하다가도 ‘여기서 핸들을 왼쪽으로 꺾으면 삶을 쉽게 끝낼 수 있겠지?’ 혹은 ‘이 베란다에서 허리를 더 내밀면 내일부터 편해질 수 있겠지?’ 뭐, 이런 생각을 자주 했었다. 그렇게 죽을 만큼 힘들었다. 하지만 정말 고맙게도, 힘든 시절을 함께해줬던 친구가 내게 5000만원을 빌려주게 된다. 힘내서 다시 일어나보라고. 그리곤 쌓여있던 빚과 식재료비를 일부 해결하고 나서는, 다시 살아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니, 그 친구에게 빌린 5000만원을 갚기 전에는 절대 죽을 수 없다고. 더 악착같이 살아남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배달의 민족 앱과의 인연은 이때부터 다시 시작됐다. 우연히 열어본 배달의 민족 앱에는 지난 3년간 좋은 평점을 남겨준 300여명의 손님들이 그 자리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동안 왜, 그 고마운 사람들을 그렇게 내버려뒀는지 미안함과 후회가 동시에 밀려왔다. 어차피 전단지 돌릴 돈도 없었기에 손님들의 리뷰에 정성껏 답글도 달고 꾸준히 리뷰 이벤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매출도 아주 조금씩,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줄까 말까할 때는 그냥 줘라
“죽기 살기로 했다. 그저 친구 돈 5000만원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배달하는 횟수가 점점 증가하고 매출도 2배 이상 올라갔다. 3년 정도를 그렇게 앞만 바라보고, 있는 힘껏 내달렸던 거 같다. 배달 앱을 통해 2~3배의 매출이 오르고 결국엔 지역 배달순위 1위를 9개월 연속 차지하면서 배달의 민족 본사에서도 내게 강연을 요청했다. 배달 앱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개인 브랜드가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앞섰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당시 2회 강연료로 받은 100여만 원은 배달외식업연구소를 만들어 운영하는데 보태게 됐다.”
배달외식업연구소는 그렇게 2016년부터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처음엔 5명을 앉혀놓은 채 강의를 했었는데 6~7개월이 지나면서는 50명 이상의 지원자가 몰려들기도 했다.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은 국내에서 유일하기도 했고,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느꼈던 배움의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는 채널이기도 했다.
이후 <달봉이치킨>은 4년 연속 배달대상을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브랜드 자체가 ‘푸드테크’와 ‘배달’이라는 키워드로 특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투자기업으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게다가 배달외식업연구소를 함께 운영하며 유익한 교육 프로그램과 활동을 동시에 이어가고 있다는 메리트는 <달봉이치킨>의 브랜드 이미지를 더욱 높여주는 시너지로 작용하게 된다.
“배달을 하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 시작한 일이다. 이렇게 배달외식업연구소를 운영하게 되면서 외식업계의 다양한 인맥과 네트워크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배달이라고 하면 아직까지도 ‘싸구려’, ‘저렴한’과 같은 인식이 남아있는데 이런 것들을 조금이나마 희석시키고 배달외식문화를 선도하는 동시에 더 나아가 국내 외식문화를 성장시키고 발전시켜나가는데 조금의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 그게 나의 작은 욕심이다.”
그의 신념, 일상에서의 철학 중 하나는 ‘줄까 말까할 때는 그냥 줘라’다. 시간이 흘러 돌아보면, 상대방에게 무엇을 그냥 준다고 해서 내게 피해가 되는 건 결국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 이러한 생각과 시선은 그의 경영방식에서도 고스란히 녹아들어있다. 받을 것을 계산하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이보다 더 풍족하고 부자인 사람이 어디 또 있을까.

  • 자세한 내용은 외식경영 2019년 4월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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