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선명희 피자> 천정효·선명희 대표

과거에 힘들고 아파본 사람은, 지금 힘든 사람을 묵묵히 아무 말 없이 다독여줄 수가 있다. ‘진짜 위로’라는 건 그런 거다. 이 부부의 이야기다.
글 김준성 기자

아내는 바느질로, 남편은 영업으로 힘겨웠던 날들
2000년대 중·후반 <피자헛>과 <도미노피자>, <빨간모자피자> 등등 수많은 피자 브랜드들이 각축을 벌이던 ‘피자시장의 전성기’가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 많던 피자 브랜드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편의점과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간편식·HMR의 성장, 그 외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먹을거리들이 늘어나면서 피자라는 아이템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듯 했다. 그러나 피자는 사라진 게 아니라 또 다른 방향과 방식으로 소비자들 가까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예전과 비교했을 때 크게 눈에 띄지 않을 뿐, 피자는 꾸준히 자신만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던 것이다.
<선명희 피자>는 그런 사례에 딱 어울리는 브랜드 중 하나다. 2006년,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좁은 골목 안에서 33m²(10평) 규모 작은 피자집으로 시작한 이 브랜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가맹사업을 시작해 현재 전국에 17개 매장을 운영 중. ‘진도산 흑미의 자가제빵’을 키워드로 내세워 건강한 피자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물론, 26~33m²(8~10평) 규모 매장에서 5000~6000만원의 월평균매출을 올리고 있을 정도로 실속 있는 운영실적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지난해 말에는 ‘창업 시 3년간 로열티 면제’, ‘3년 유지 시 가맹비 반환’ 등의 제도를 만들어 시행한 바 있으며, 올해부터는 가맹점주의 휴식을 위해 본사 직원이 각 가맹점에 파견되는 ‘가맹점주 휴식일 위탁운영제도’를 점차적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이처럼 <선명희 피자>는 퀄리티 높은 피자를 만들어내는 건 물론, 가맹점주 입장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한다. 이러한 배경에는 천정효·선명희 대표가 지나온 시간의 힘겨운 경험들이 자리하고 있다.
“2006년 피자집을 처음 오픈하기까지에도 굉장히 많은 방황과 혼란, 시행착오가 있었다. 대학교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후 잘 나가는 벤처기업의 경영지원팀장으로 일하기도 했고, 2004년에는 5000만원의 투자를 받아 키오스크 관련 유통회사를 직접 설립, 운영해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당시에 키오스크는 너무 앞서나간 아이템이었다. 결국엔 1년 반 만에 회사 문을 닫게 됐다. 사업실패 후 몇 곳의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긴 했지만, 3~4년에 한 번씩 매너리즘에 빠지며 일에 대한 회의감에 또 힘들어질 생각을 하니 회사 일에 열정 쏟을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렇게 그냥 방황하는 날들이 계속됐다.” 천정효·선명희 대표 부부에게는 힘겨운 날들이 이어졌다. 아이들의 유치원, 학원비는 물론이고 공과금까지 내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 당시 셋째를 임신 중이었던 아내 선명희 대표는 바느질 등 집에서 할 수 있는 소일거리로 살림에 필요한 돈을 벌었고, 남편 천정효 대표는 카페와 호텔 등으로 영업을 다니며 솔잎차 원액을 팔아 생활비를 마련하고자 했다. 하지만 영업이라는 건 늘 거절당하는 걸 전제로 하는 일. 이곳저곳에서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친구가 피자가게를 오픈했다고 해서 그곳엘 다녀왔다. 운영이 잘 되더라. 그 전까지는 피자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우연히 친구의 피자가게를 보고는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거다. 그 날부터 친구의 피자집에서 무보수로 피자 만드는 걸 배우기 시작했다. 휴일에는 수많은 피자매장을 전부 찾아다녔다. 이곳의 피자 맛은 어떤지, 저곳의 포장서비스는 어떤지, 아내와 둘이서 피자공부를 깊게 하기 시작한 거지.”
그렇게 1~2년이 지난 후 ‘제대로 된 피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창업할 수 있는 돈은 없었다. 과거, 남의 돈으로 투자를 받아 회사를 운영해본 적이 있기에 그게 그리 좋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수중에 있는 돈을 전부 끌어다 쓰거나 지인 또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힘겹게 지나왔던 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으니.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가 않았다.


아르바이트생 월급 주기 위해 다시 취직하기도
그리고 2006년,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좁은 골목 안에 33m²(10평) 규모의 작은 피자집이 문을 연다. <정통손피자>, 지금의 <선명희 피자> 전신이었다. 부부는 매장을 오픈하고 난 후에도 동네 피자집의 인기메뉴가 무엇인지, 어느 시간에 어떤 손님들이 많이 이동하는지 꼼꼼히 체크하고 연구했다. 매일 아침 8시부터 다음날 새벽 2~3시까지 피자를 ‘잘 만들고 잘 판매하는 일’에만 집중했다. 머릿속은 피자로만 가득 들어찼다. 5~6년간 먹어본 피자만 대략 1000개 이상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당시 객 단가 1만원 초반의 피자로 일 매출 100만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외식업으로는 첫 창업임에도 나름 괜찮은 성적표를 받아든 셈이었다. 그러나 처음 가보는 길은 누구에게나 걸림돌 밭. .

어려운 사람 지나칠 수 없어 가맹사업 시작
“<선명희 피자> 매장이 잘 되는 것을 보면서 가맹점을 내달라하는 사람들도 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애초부터 프랜차이즈 사업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기에 피자 만드는 법을 가르쳐준다거나 운영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데에만 신경을 써줬다. 하지만 내 시간을 할애해 무상으로 그렇게 도와줬음에도 불구하고 고마워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매장이 잘 되면 자신이 잘 했기 때문이고, 매출이 적게 나오면 내가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었다. 서운했다. 게다가 때마침 지인이 프랜차이즈 사업을 함께 하자고 해서 참여했다가 뒤통수를 맞는 일도 있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나락으로까지 치달았다.” 하지만 그래도 피자집 창업을 하고 싶어 찾아오는 사람들을 못 본체 할 수 없었다. 분명히 많지 않은 돈을 가지고 더 이상 선택할 곳이 없어 찾아온 것일 텐데 그 손을 매몰차게 뿌리칠 수가 없었다.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곰팡이 슬어있던 그 방에서 살던 나날들이 자연스레 오버랩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기로 한다. 기왕 도움을 주려면 제대로 주고 싶었다. 그렇게 뒤늦게, <선명희 피자>를 론칭한 지 13년 만에 본격적인 가맹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 자세한 내용은 외식경영 2019년 5월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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