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화포식당><우화미><쟁반집>이성만 대표

언제나 같음

‘언제나 같음’을 유지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어려운 상황에 치이고 또 치여 봤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레벨이랄까.
글 김준성 기자

 

 

 

 

전국에 총 60여개 매장, 연매출 120억원 예상

외식업계는 언제나 힘들었다. 특히 최근엔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외식구매형태가 변화하는 것은 물론, 육류와 관련된 질병들 또한 자주 발생하게 되면서 고깃집들의 어려움이 한층 더 심화되고 있다. 게다가 돼지고기 삼겹살을 중심으로 다양한 콘셉트의 고깃집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는 상황은 시장 내 경쟁까지 더욱 치열하게 만들어 이와 관련한 브랜드의 수명을 오래가지 못하게끔 만들고 있다.
이 와중에도 <화포식당>은 나름 안정적인 매출을 유지하며 이미지의 소모도 적은 브랜드. 농가와 독점계약 맺어 납품받은 원육을 10~20일가량 습식 숙성한 후 직원들이 직접 그릴링 해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의 고깃집들에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화포식당>은 고깃집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원육 퀄리티와 관리, 그릴링’에 지속적으로 신경 쓰면서 손님들이 느끼는 고기 맛이 꾸준할 수 있도록 하는데 집중했다. 뿐만 아니라 <화포식당>은 60개 매장까지만 오픈할 계획, 이후 각 매장의 맛 퀄리티를 유지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자 하는 경영방침으로 이 브랜드의 가치와 안정성을 한층 더 부각시키고 있다.

 

 

20대, 아버지의 보증으로 돈 빌려 시작한 개인 사업

(주)다이닝SM의 이성만 대표는 56세. 대학에서는 조선공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회사에 들어가 인턴으로 일하다 보니 조선공학이나 배 설계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 졸업 후엔 건축물의 스테인리스스틸 파이프를 생산하는 대기업 관리부로 입사하게 된다.
“입사한 후 몇 달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인가. 코엑스 전시장에 서류전달 심부름을 간 적이 있었다. 우리 회사가 주최, 진행하는 전시행사였는데 그 행사장에서 영업팀 일하는 걸 우연히 지켜보게 된 거다. 홍보부스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제품소개를 하는데 뭔가 어설프게 느껴졌고, 그게 너무 답답했다. 내 소속은 관리부였지만 생산라인에 대해서도 나름 전문적인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전시장 현장에서의 영업을 도와주게 됐다. 본래 여기저기 나서는 성격은 아닌데 어지간히 답답했었나보다. 그 모습을 보고 영업부 팀장이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운명이라는 건 피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당시엔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이걸 내가 왜 해야 하는 거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훗날 돌아보게 되면 그렇게 서로 다른 경험과 지식들이 한데 뒤섞여 더 큰 시너지를 만들어내기도 하니까. 그게 다른 이들과 차별화되는 ‘나만의 자산’이 되기도 하니까. 적성에 맞지 않는 조선공학을 전공했다가 관리부 업무, 그리고 그 날 전시장에서 영업팀의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는, 그렇게 될 운명 아니었을까.

 

 

 

IMF, 몇 십억원의 빚,대부업체 대출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낮 가리지 않으며 일만 열심히 해서인지 대기업 일거리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러다 금방 부자 되겠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1990년대 말, IMF를 맞닥뜨리며 곤두박질쳤다. 일을 마무리 한 게 많았는데도 몇 십억원의 돈을 받지 못한 채 나앉게 됐다. 뭔가 안전망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식당, 외식업이었다.”
정육기술자로 일하던 친구, 그리고 아내의 도움을 받아 2008년 66.1m²(20평)짜리 한우정육식당을 인천 옥련동에 오픈하게 된다. 식당으로 큰돈 벌 생각은 없었기에 좋은 고기를 싼 가격에 팔기 시작했다. 월 매출 3000만원, 하지만 손에 가져가는 건 20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식당 앞에서 기다리다 돌아가는 손님들이 안타까워 더 큰 매장으로 옮길 생각을 한 것도 이때쯤이었다. 보증금 1억원에 월세 600만원짜리 231.4m²(70평) 매장으로.
“한두 달은 그런대로 운영됐다. 그런데 매출이 점점 떨어지면서 매달 몇 천만원의 적자가 쌓이기 시작한 거다. 10명이나 있던 직원은 조금씩 줄여나가 나중엔 아내와 나까지 총 3명이 운영했고 전셋집 또한 50만원짜리 월세로, 그 다음엔 30만원짜리 단칸방으로 온 가족이 옮겨 다니며 3년여를 버텼다. 돌아보면, 아무 대책과 공부도 없이 열심히만 했던 것 같다. 메뉴구성이든 마케팅이든 나름의 방향과 전략이 있어야 했는데 무턱대고 ‘열심히만 하면 언젠간 매출이 오를 것’이라 생각했으니 몸만 축나게 되는 상황이었다.”

 

 

어려웠을 때의 마음, 다시 곱씹으며

하지만 당장 차비가 없었다. 다른 식당 벤치마킹을 하려고 해도 돈이 있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닥에 떨어져있는 대부업체 광고를 보곤 전화를 했다. 1000만원을 빌리기로 했는데 800만원만 받았고 매일 10여만원씩 이자를 갚아나가며, 나중엔 1200만원으로 돌려줘야만 했다. 이러나저러나 암울했던 때, 더 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 돈으로 당시 여러 컨설턴트들도 만나고 벤치마킹도 하면서, 이때 (주)외식경영 김현수 대표를 만나게 됐다. 아내와 함께 그를 따라다니며 고기도 반찬도 하나하나 공부하면서 점점 앞이 보이는 느낌을 가지게 됐다. 상황은 달라진 게 없어도 몰랐던 것이 보이니 덜 힘들었다. 그리고 김 대표의 도움과 조언을 받아 2010년, 삼겹살·목살전문점 <화미소금구이>를 오픈하게 된다.”아나가는 동시에 2~3호점도 연이어 오픈했고, 방송 프로그램에도 노출되며 유명세를 탔다. 자신과 똑같은 상황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2015년 즈음엔 <화포식당>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가맹사업을 펼쳐나갔다. 그는 그렇게 어려웠던 시간들을 지나왔기에 지금도 작은 부분들을 허투루 할 수 없다. 게을러질 수가 없다. 그게 지금의 <화포식당>과 <우화미>, 그리고 <쟁반집>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외식경영 2019년 12월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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