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 업


㈜델리후레쉬 강인호 대표

 

누가 뭐래도 마음먹은 일은 꼭 실천으로 옮겨야 직성이 풀린다. 실패담도 호탕하게 웃고 넘길 만큼 대범한 성격. ㈜델리후레쉬의 청사진 역시 단순하지만 명확하게. 얼핏 그를 닮았다. 에디터 김선주

 

회계사에서 소스 제조사 대표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지만, 회계사였던 내가 소스 공장을 운영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지난날을 회상하는 강인호 대표. 그는 대기업 경영기획실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돈의 흐름을 읽고 기업 전략을 세워야 했기에 입사 후에도 자기개발은 필수였다. 자격증 공부하느라 밤을 지새는 날이 대부분이었지만, 국회에 세무 법을 건의할 정도로 일에 대한 열의가 남달랐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학벌주의가 심할 때이기도 했고, 알게 모르게 ‘승진 뇌물’ 주고받는 일을 자주 목격하게 되면서 불쾌한 감정이 쌓였던 것. 이에 대한 불만은 그가 지방으로 발령이 나던 찰나에 터졌다.
“전국 각지로 발령이 나다 보니 일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다.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온 게 유통업이었다. 그때가 1970년도 말,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말한 ‘매출 30조 달성’이 실제 일어날 정도로 잠재력 있는 시장이었다. 외식업의 가능성을 짐작해본 건 아마 이때부터가 아닐까 싶다.”

실현 가능한 작은 목표부터 하나씩
그의 나이 28살, 어느 식품유통회사 팀장을 맡게 되면서 본격적인 외식업의 길로 들어섰다. 그의 제안으로 도시락 공장을 설립하기도 하고, 반찬을 만들어 백화점에 입점도 해봤지만 결과는 실패. 1980년도 당시와 잘 맞지 않는 아이템이었을뿐더러 부족한 경험 때문이었다.
“외식업을 만만히 보고 큰코다쳤다. 그때부터 미국과 일본 등 프랜차이즈 선진 사례를 중점적으로 살펴봤다. 그러던 어느 날 <맥도날드> 국내 1호점이 오픈했고, 앞으로 프랜차이즈에 관심이 쏠리겠구나 싶었다. <하나김밥>을 기획한 건 그래서였다.”
그렇게 직영점 50호점까지 안정적으로 운영하던 중 그는 지인에게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된다. 소스 제조사 ㈜델리후레쉬의 경영을 맡아달라는 것. ‘주방 매뉴얼을 좀 더 간편하게 바꿀 수 있겠다’라는 생각에 흔쾌히 손을 잡았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공장을 등록하기까지 돈도 많이 들었고, 기껏 만든 소스를 카피한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회의감도 들었다.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뭔가 다른 점이 필요했다. 그가 찾은 답은 직화 제조 방식. 생산량이 많진 않아도 뭉근하게 장시간 끓인 소스는 맛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샤이바나>, <니뽕내뽕> 등 다양한 프랜차이즈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델리후레쉬. 현재 약 300여 종의 소스부터 절임채소류, 과채류 가공품, 그리고 육가공 제품까지 상품 라인을 점차 확대하고 있으며 최근엔 간편식 제품까지 개발 중이다. 강 대표는 지갑 속 30년간 고이 간직한 쪽지를 건네며 자신의 신념과 생각에 대해서도 말했다.
“충서(忠恕). 자신에게 충실하고 정성을 다하며, 그러한 자세로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는 말이다. 내 신념과 같은 단어다. 원래 좀 단순한 편이라 일 앞에선 주변을 잘 신경 쓰지 않는데, 생각해 보면 이러한 태도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것 같다. 앞으로도 실천 가능한 목표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이뤄가는 재미를 느꼈으면 한다.”

 

* 자세한 내용은 vol.192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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