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인 열전


<김삼관> 신재우 대표

고객을 남기는 장사법
<김삼관> 신재우 대표

20대 중반의 청년 신재우는 패기만만했다. 다이아몬드 딜러로서 크게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그 자신감은 미국보석학협회(GIA) 정회원이 되면서 더 확고했다. 1997년 5월, 결혼식을 올리자 책임감이 더해졌다. 이제 신부도 맞이했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승부 를 걸 때라고 생각했다. 에디터 이정훈

 

 

IMF와 화재로 두 번 울다

가능한 한 자금을 최대한 끌어 모았다. 그 돈으로 외국에서 160만 달러어치의 다이아몬드를 사들였다.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하려던 그 순간 예기치 않게 IMF 사태가 터졌다. 타이밍이 너무 치명적이었다. 급격한 환율 변동으로 사업을 시작해보기도 전에 10억원의 환차손을 입었다. 7000만원어치 보석이 든 가방을 분실해 타격을 입은 적도 있었지만 이때의 손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반환 가능한 일부 물량은 급히 되돌려 보냈다. 남은 물량은 자금회전을 위해 싼 값에 처분해야 했다. 그의 약점을 알고 거의 공짜로 다이아몬드를 쓸어가려는 외국 거래처도 나타났다. 보석은 아름다웠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신 대표는 보석 사업에서 손을 떼고 외식업으로 눈을 돌렸다.
부산에는 부친이 운영하는 횟집이 있었다. 식당 일을 배우려고 부친의 횟집에서 1년간 일했다. 마침 부산의 한 호텔 일식집에 근무하던 동생에게 최신 조리법도 배웠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서울 회현동의 유명 중식당에 들어갔다. 당시는 퓨전음식이 유행했던 터라 중식을 익혀두고 싶었다. 물불 안 가리고 배웠다. 뜨거운 면을 맨 손으로 작업해 손 껍질이 세 번 벗겨졌다. 쌀을 씻을 때면 손이 쨍그랑 깨질 것 같았다. 중식당 주인은 아는 선배의 부친이었다. 그럼에도 핵심 조리기술은 가르쳐주길 꺼려했다. 중식당을 나온 뒤에도 일식당, 참치 집, 바닷가 횟집 등에서 조리법을 익혔다.
1999년에 복어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어떤 음식이든 조리에 자신이 생겼다. 그해 부친이 새 점포를 마련하고 횟집을 이전했다. 부친은 기존 횟집을 신 대표에게 운영해볼 것을 제안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게를 물려주는 통상적인 대물림은 아니었다. 매월 500만원씩 인수대금을 분할 상환하는 조건이었다. 그동안 고생하며 식당 일을 배운 보람이 있었다. 231㎡(70평) 매장에서 월 5000~6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당시만 해도 호텔에서나 사용하는 고급 식재료를 활용해 음식 수준을 높인 게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차츰 부채도 줄어들었다.
한창 탄력이 붙던 2003년 1월, 갑작스런 화재로 횟집이 전소됐다. 화재보험 보장 만기일이 이미 며칠 지나 단 한 푼의 보상도 못 받았다. 하필 보험 갱신을 하기 직전에 화재가 난 것. 몇 년 동안 안정적으로 살았던 터전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자 잠시 방황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화마가 모든 걸 태웠으나 희망까지 태우진 못했다. 다시 식당 직원으로 들어갔다. 부인도 힘을 보탰다. 부부가 버는 돈은 모두 빚 갚는데 썼다.
“아내가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해준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아내도 입주 아파트 청소 일을 하면서 빚 갚기를 거들었다. 미안하고 참 고마웠다.”

 

 

‘장사, 이 뭐꼬?’
화두 안고 3개점 경영

빚을 모두 청산하자 식당 일에 싫증이 났다. 잠시 인테리어 업에 종사하는 친구를 따라 인테리어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기본적으로 외식인이었다. 2014년에는 캐나다의 스시집, 2015년에는 폴란드 바르샤바의 한식당 조리실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2016년 친구의 제안으로 <어사출또> 화정점을 열었다. 제2, 제3 금융권의 돈까지 끌어와 시도한 창업이었다. 신 대표로서는 오랜만의 복귀였다. 그는 다른 가맹점들과 달리 직접 트럭을 몰고 본사에 가서 해산물을 실어왔다. 가만히 앉아서 받아쓰는 것보다 달라도 한참 달랐다. 본사의 계절별 해산물 프로모션 지원에 힘입어 열정적으로 일하다 보니 점포를 4개까지 늘렸다. 지금은 세 개의 점포를 전직 직원에게 매각하고 화정점 1개점만 운영하고 있다.
<어사출또>를 운영하면서 보람도 느꼈지만 반성도 했다. 장사의 본질은 모른 채 무작정 일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장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전문 교육 과정들을 이수하며 실력을 쌓았다. 김유진 컨설턴트의 지도를 받으면서 차츰 장사란 무엇인지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젠 가성비뿐 아니라 가심비의 중요성도 깨달았다. 외식경영의 브랜드 1기 과정도 수료했다. 인사이트의 개념과 중요성도 배웠다. 외식업체 오너들과 교류하면서 미처 몰랐던 지식과 정보도 얻었다.
2019년에는 고기 아이템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양대창 전문점 <꿀양집>을 고양시 대화동에 창업했다. 그동안의 장사 공부를 바탕으로 신 대표가 직접 만든 브랜드라 더 애정이 갔다. 2호점도 냈다. 그러나 두 점포가 너무 인접해 있다 보니 고객층과 매출이 양분됐다. <꿀양집>을 대화동의 1개점 체제로 정리했다. 2호점 자리에는 취식 빈도가 높고 밥과 술이 가능한 아이템인 <김삼관>을 열었다. <외식업 디자인연구소 씨앗> 김선희 대표가 기획을 맡았다.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성을 콘셉트에 녹여내 큰 도움이 됐다.
현재 신재우 대표는 해산물 프랜차이즈 가맹점 <어사출또> 화정점, 양대창 전문점 <꿀양집>과 함께 <김삼관>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탕, 곱창전골, 된장찌개 같은 아이템의 프랜차이즈 가맹사업을 구상 중이다. 부부가 하루 8~9시간 일하고 1주일에 하루 쉬면서 월 1000만원 정도 버는 아이템이다. 사업을 전개하더라도 당장의 수익 계산보다 고객이 환호할 수 있는 장치를 먼저 마련할 생각이다.
“성공사례들을 분석해보면 ‘장사는 돈보다 고객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익보다 고객을 남겨야 한다. 식당 주인이 할 일은 딱 하나. 손님이 와야 할 이유를 만드는 거다. 어떤 아이템이든 고객이 30분쯤 운전해 찾아가고 싶은 식당으로 가꾸는 게 내 목표다.”

 

* 자세한 내용은 vol.192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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